봄방학 보내기

2012. 2. 29. 03:03雜想


2월 16일, 어린이집 수료식을 끝으로 도경이의 어린이집 생활 첫년도는 마무리되었다. 이후 2월 중하순 기간은 비공식 봄방학, 가정보육 장려 기간이다. 공식 방학은 정해져 있는지라 휴원할 수는 없지만, 신학년 준비며 교실 수리 재배치 등으로 어수선한 상황.. 게다가 담당 샘도 교실도 사물함도 아무것도 없이 그냥 통합반 운영... 도경이야 어쩔 수 없이 통합반을 다녀야 했지만, 이런 상황이 짠한 할머니는 이참에 영주 데리고 내려가 며칠 지내다 오시겠다 했다.
지난 11월~12월에 두 번 영주 내려갔다 오고 나서, 알게 모르게 분리불안이 생긴 도경이었다. 어디 간다고만 하면 "엄마 아빠랑 같이"를 조건으로 다는 도경이었다. 예전에는 큰엄마 큰아빠네서 잘래? 하면 당장 좋다고 외쳐대던 도경이었지만,  설무렵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큰아빠네서 자자고 아무리 졸라(?)도, 엄마 아빠가 집에서 잘 거라는 걸 알기 때문에 절대 싫다던 도경.. 그 구슬림이 반복되자 울먹이기까지;;;; 덕분에 약간의 긴장이 조성되기도...;;; 같은 상황은 외가에 가서도 마찬가지로 계속 벌어졌다.
아이가 불안감을 느낄 때는, 그 불안감을 존중해주고, 자연 치유될 때까지 느긋하게.. 어린이집 가는 걸 싫어하긴 하지만 그래도 엄마 아빠랑 생활하며 어린이집 다니겠다고 하는 게 도경이 스스로 내린 차선책이었다. ㅠㅠ
며칠 내려갔다 오면 좋긴 하겠지만, 도경이가 불안해 하는데 굳이 권하고 싶지는 않았던 게 내 마음. 봄방학 날짜가 다가오고 할머니나 엄마 아빠가 한두번 이야기 꺼냈을 때, 절대 안 간다고 해서, 거의 마음을 접고 있었던 참이었다. 그런데 봄방학 얼마 전, 웬일로 할아버지 할머니랑 전화하고 싶대서 영주에 전화했을 때, 할아버지가 다정한 목소리로 "도경이 봄방학하면 영주에 내려와서 할아버지랑 놀자? " 하시자, 도경이가 급 방긋하며 좋다고 한다. 그래서 도경이의 영주행 결정!
그 이후 일주일 정도 시간을 보내다, 마침내 방학이 되고, 도경이를 데리러 할머니가 오셨다. 근데 갑자기 한번 태도 돌변. 엄마랑 둘이 밥 먹다가 내가 "내일 모래 할머니랑 같이 영주 가면 할아버지랑도 오랜만에 놀고, 좋겠네?" 했더니, "할아버지랑 할머니랑 도경이랑 엄마랑 아빠랑 같이 영주에서 놀거야" 란다.. -_-;; 엄마 아빠는 못 간다고 이야기하니 무조건 같이 가야 한다고.. 또 울먹일 뻔 하며... 여튼, 조금 긴장이 돌았는데, 다음날 하루를 할머니랑 놀면서 마음이 좀 푸근해졌는지, 엄마아빠랑 같이 가자는 이야기 안 하고 지난 화요일, 할머니랑 같이 기차 타고 내려갔다. 세 밤만 자고 올 거라는 말을 남기고...
기차역에서 아이를 배웅하면 마음이 왜 이런지.. 겨울이라 모자에 눌린 머리카락이 촉촉하니 내려앉아, 왠지 헤어질 때 눈망울이 젖은 듯이.. 애처로와 보이곤 한다. 기차 탄다고 신나하는 걸 뻔히 보면서도.. 특히나 이번에는, 가기 싫어 망설이던 게 눈이 밟혀, 보내고 나서 어찌나 마음이 휑하던지... 화요일, 아이 보낸 첫날을 걷잡을 수 없는 마음으로 보내고.. ㅎㅎ 힘든 마음으로 며칠.. 일 좀 하다가 감기 걸려 며칠.. 기침으로 시작된 봄감기에 고열이 올라.. 영영 안 나을 것만 같았던.. 불과 사흘이었지만.. 모처럼의 둘만의 시간.. 당분간은 누리기 힘든 시간인데 Olleh!! 한번 못 외쳐보고, 데이트는 커녕 제대로 된 외식 한 번 못하고.. ㅠㅠ 그렇다고 밀린 일도 제대로 못 하고.. 일주일의 시간을 보내버렸다.. 하긴.. 도경이를 보내고 나면, 늘 그랬었다.. ㅎㅎㅎ
세 밤 자고 온다던 아이는, 내려가자 마자 한 통화에서 여덟밤 자고 오겠다고 신나서 이야기했고, 결국은 일주일을 꽉 채워 오늘 집으로 돌아왔다.
아빠는 일 때문에 못 나가고, 엄마 혼자 청량리역에 마중.. 몇미터 앞에서 두리번거리는 아이를 보고, 몸을 굽혀 씩 웃으니, 마침내 엄마를 발견하고는 방긋 웃는다.. 그리고 엄마에게 달려와 안기는 도경.. 에공.. 일주일 떨어져 있었으면서 이게 왠 감동의 상봉이람.. ㅎㅎㅎ
일주일 떨어져 있는 동안, 전화통화도 제대로 못 했고, 그나마 전화할 때도 왠지 뚱하고 별 말이 없었던 도경.. 그 중 토요일에는 내가 어린이집 오리엔테이션 다녀와서 통화하면서, 잎새2반 최유리선생님이 새 담임선생님이라는 거.. 종현이랑 다은이, 지선이랑 계속 같은 반이라는 거, 잎새2반 친구였던 동찬이랑 누구누구가 같은 반이라는 거 알려주면서 그나마 조금 대화했었다. 오늘 영주에서 떠날 준비하면서, 할아버지가 "하루만 더 자고 가라"하시자 단칼에 "오늘 갈꺼야!" 했다는 도경.. ㅎㅎㅎ
영주에서는 부모님이 감기 걸릴까 봐 거의 안 데리고 나가시고, 마트나 잠깐씩 가고, 사우나에 두어번 간 게 전부란다. 마트에 가서도 병 옮을까봐 놀이방에는 거의 못 가게 하셨다고.. 식기랑 수저도 뜨거운 물로 꼭 한번씩 삶아 쓰셨단다.. 지난 여름 마침 영주에 있을 때 수족구 앓는 걸 경험하셨으니.. ㅠㅠ 그러실 법도 하다.. 여튼 모처럼 스트레스 없이, 짜여진 일상 없이, 한껏 귀여워해주시는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마냥 어리광부리며 맛난 것도 잔뜩 먹고 뒹굴다 온 도경.. 대략 몸무게가 500g이상 쪄 왔다.. 넙대대 정도가 아니라, 축 늘어진 볼살이 눈코입을 파묻을 정도.. 기골도 장대해짐.. ㅋㅋㅋ 저녁 내내 이 녀석 얼굴 디룩해진 거 보면서 웃겨 죽는 줄 알았다.. 저녁밥도 "안 먹으면 간식도 없어!"라는 엄마 위협에 잔뜩 먹고는 배가 이만해져서 앉아 있는데, 배 나온 50대 아저씨 폼이었다.. 이걸 웃어, 울어.. ㅋㅋㅋ ㅠㅠ
"밥을 안 먹으면 간식도 없다"는 명제를 인식시킨 지는 꽤 되었다.  밥은, 강제로 억지로 먹이는 건 아닌데, 먹는 걸 좋아하고 잘 먹긴 하는데, 하도 왔다갔다 한 시간이 걸려 먹곤 하는 도경이다.. 억지로 먹이는 건가 싶어 좀 남기게 하면 역시나 간식 요구가 많아지고, 다 먹게 하자니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고.. 얼마 전부터 지금! 자리에 앉아서 먹지 않으면 밥상 치우고, 그럼 밥 남긴 거니까 간식도 없는 거다.. 라는 걸, 하룻 저녁 쏙 빠진 눈물로 체득시켰던 참이었다.. ㅎㅎ;;; (밥 치우고, 그날 저녁 간식을 요구한 도경은 냉혈한 엄마 아빠의 외면을 받음.. ^^;;) 십여일 지났는데도, 오늘 저녁 "지금 와서 안 먹으면 저녁 간식 없는거야" 하니, 군기 바짝 들어 달려오는 도경.. ;;;;
그래도, 풀죽어 투항하는 패잔병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의자 위, 식탁 밑을 오르내리며.. 그냥 떠주는 밥만 생각없이 먹는다.. -_-;;; 놀면서.. 그러다가 또 식탁을 떠나 어디론가 가면서.. "저거.. 창문(레고) 열고와야돼!" 두다다 달려가 창문 다 열고 다시 두다다 달려온다 "병원 환기 시켜야 하거든" 그리고 또 다시 저 자동차, 저기 갖다줘야해!! 그리고는 재빨리 해치우고 다시 두다다 달려옴;;; 얼마나 노는 데 심취하며 먹었던지, 내가 분명 "이야, 이제 마지막 숟가락이다" 하며 먹여주고 다먹었음을 선포했는데도, 우물우물 먹더니 또 입을 아~ 벌린다.. 나는 벌써 밥그릇 치웠건만.. 다 먹었다 하니, 의심스러운 듯이 되묻는다 "도경이 밥 다 먹었어??" 저녁 간식 먹을 자격이 되는건지 조금 걱정스러워 하며.. ㅎㅎ
부산스럽지만, 행복한 우리집 저녁 풍경.. 저녁 먹고 배 깎아 나눠 먹고, 위협과 회유가 난무하긴 했지만, 이 닦고 세수도 깨끗이 하고 크림도 바르고, 여튼 좋아하는 카 친구들도 10분 보기로 약속하고 12분 보고 아쉬움 속에 접고, 간식으로 비타민이랑 작은 과자 한조각 먹고 다시 이 닦고, 이불놀이 한번 하고 잠자리에 들어 5 분 만에 잠이 들었다.. 으으.. 자유가 아쉽긴 하지만, 마음은 너무나 포근하다...
오늘의 평화는, 모두가 기분이 좋았기 때문에 가능하긴 했겠지.. 언제나 오늘같을 수는 없겠지.. 그래도...

 만 30~36개월 영유아 건강검진을 갔다. 예약이 엇갈리고 도경이의 영주 방문, 의외로 긴 체류 등으로 거의 포기했는데.. 오늘 올라온대서 급히 병원 알아보고, 다행히 당일 예약을 받아줘서.. (다른 병원으로 옮기려 했었는데.. 옮기려 한 병원들이 다 당일예약을 거부.. ㅠㅠ) 서울 도착하고 청량리역에서 바로 집에 어머님만 내려드리고 병원으로 직행.. 예약시간 5분 전에 safe! 병원에 들어가 접수하고, 쉬 마렵다 해서 바로 화장실 가서 쉬하고, 엄마도 쉬하고.. 
병원 화장실에 걸고리가 없어서, 문 꽉 잡고 밖에서 있으라고 하고는 일보고 바지 올리니, 바로 문을 여는 도경.. 웃으며 엄마가 문 잡고 있으라고 했쟎아.. 하니, "도경이가 문 열어준거야!" 하며 서운해한다.. ㅎㅎㅎ 
여튼.. 다시 병원에 들어와 엄마는 열심히 문진표 작성하는 동안, 작게 마련된 놀이방에 들어가 신나게 노는 도경이었다.. 오랜만에 미끄럼도 타고, 처음 보는 다섯살 형아랑 조곤조곤 대화도 하고.. 형아가 붙임성 있게 놀아주기도 했지만, 도경이도 먼저 "형아, 나랑 놀아줘"란 말 (엄마가 사전에 코치한 말이지만..)을 던지는 모습을 보여줌! 형이 시원하게 "그래 알았어!" 하고는 도란도란 논다.. 이쁜것들... 근데 잠시 후 도경이의 약간 성질난 말투.. 형아가 도경이한테 "아가야" 뭐 이렇게 불렀나보다.. "아기 아니야! 형아야! ... 도고이(도경이)는 형아라고! 고그느반(어린이집 꽃그늘반) 간다고!" ㅋㅋㅋㅋ 
어린이집에서, 이제 많이 자라서 잎새반 떠나 형님반인 꽃그늘반에 간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안 그래도 얼마전 한살 더 먹어 네살 되고, 여튼 형님 되었다는 자부심이 컸는데, 아기라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상했나보다... 여튼, '고그느반'이 뭔지 알 턱이 없는, 불쌍한 다섯살 형아... ㅋㅋㅋ 그래도 둘이 그뒤에도 잘 노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성질은 좀 냈지만, 자기 의사표현을 확실히 하고, 논리적으로 설명도 하려 하고.. 많이 컸다... 
형아가 떠나자 잠시 혼자 놀다가, 이번에는 일곱살 여자아이가 놀이방으로 들어갔다. 또 둘이 뭐라뭐라 논다. 이번엔 주로 누나가 도경이를 도발.. 미끄럼을 거꾸로 올라가며 "너, 양말 신고 미끄럼 올라갈 수 있어?" 도경이는 멀뚱히 지켜보면서 "아니, 못해" 한다.. 엥? 한참뒤 누나가 진료받으러 가 다시 혼자가 되자, 혼자서 양말신은채로 낑낑 미끄럼 올라가는 도경.. 끝까지 못 올라가고 철푸덕 엎어지며 주루룩 미끄러지자, 이젠 그게 재밌다.. 낑낑 올라가다가 거의 다 가서 철푸덕, 주루루룩, 반복하며 엄마 이것 좀 보라고 웃어댄다..
누나가 잠시 후 돌아와 이번에는 놀이기구 꼭대기를 올라가며 또 말한다. "너, 여기 올라올 수 있어?" 다시 "아니, 못해" 대답하는 도경.. 또 좀있다 누나가 놀이방을 나오자, 혼자 낑낑대며 놀이기구 꼭대기에 올라가기를 시도한다. 마침내 놀이기구를 정복한 도경.. 또 엄마 보라고 신나하며.. 그리고 오르락 내리락... 도발적인 누나 덕분에, 평소에는 할 생각도 잘 안 했던 놀이기구 정복을 마친 도경이었다.. 오늘 밤 근육 좀 아플걸... ㅎㅎ
영유아 건강검진 꼭 필요한 건 아니지만, 아이에 대해 새로운 걸 알게 되곤 한다.. 문진표 작성하면서, 확실치 않은 건 아이 불러 즉석에서 해보곤 했다. 숫자 세 개 연달아 불러주면 그대로 따라하는지, 제자리뜀뛰기로 15cm 뛰는지 등등.. 모두 가뿐히 통과! 제자리뜀뛰기는 따라해보라 했더니, 50cm는 풀쩍 뛰어버린다 ㅎㅎ 한쪽 발로 1초 이상 서기도, 약간 어려웠지만.. 무난히 성공.. 사람 비슷한 형상 그림을 보고 사람이라고 인식하는지 알아보는 질문에는. "권도경" 이라고 대답한다.. 이런 자기 중심적인 녀석.. ㅎㅎㅎ 
키 99.7cm (85%).. 아까비.. 서서 조금 몸 꼿꼿이 하게 해주려던 차에 잰 거라.. ㅋㅋㅋ 
몸무게는 16.7kg이 뙇!! 옷 무게 빼고 16.2(82%)로 기록됨.. 머리둘레 51cm(80%) ㅎㅎ
시력 잴 때, 기호화된 그림을 답하기가 어려웠는지.. 시력 0.4 ??? 새인지 오리인지 모를 그림을 뭐라고 이야기했는데, 아무도 못 알아듣자, 이후로는 의사선생님이 짚어주는 모든 그림을 "물고기"라고 답함.. ㅠㅠ 눈 나쁜 거면 안 되는데... ㅠㅠ

영주 생활이 좋긴 좋았나보다 싶은 것이, 도경이 목상태가 최상!! 늘 반쯤, 아니면 거의 쉬어있는 도경인데.. (우느라...) 진짜 한 일주일 안 울고 안 소리지른 게 눈에 보이게 목이 탁 트였다.. 게다가.. 드문드문.. 사투리..ㅋㅋㅋㅋ 그리고, 아빠의 무뚝뚝 억양.. 
그리고, 이젠 아기가 아닌, 사내녀석 말투. 톤이 가늘고 높은 "아빠~"가 아니고, 굵게 툭 내던지듯 "아빠!"
오늘의 버럭질.. 우유 사고 오는 길에, 꽤 높은 턱을 내려가야 하는데, 평소처럼 엄마가 살짝 안아 내려주려 하자 완강히 "도경이가, 도경이가" 한다. 내버려뒀더니, 바로 풀쩍 점프, 그리고 살짝 꽈당.. ㅠㅠ 잽싸게 양팔을 잡아 거의 안 넘어졌지만, 화들짝 놀란 도경, 성질내서 버럭! 한다. "여기에 계단을 안만들어놓고!!!!!" 지가 뛰어내린다 해놓고... -_-;;

내비게이션으로 아파트 단지를 찍고 거의 다 오니 내비가 "목적지에 도착하였습니다" 는 안내멘트를 말한다. 그러자 또 성질.. "서울에 도착했습니다 해야지!!!!" -__-;;; 

아이를 오랜만에 보니, 말이 많아지는 엄마다... 그냥.. 오늘의 일기.. 끝..